영화 리뷰/다시 보면 다른 영화

영화 위키드 후기, 두 번 보고 나서야 보인 엘파바의 춤

무비라이터 2026. 5. 25. 01:00

2024년 영화 위키드(Wicked) 공식 포스터,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 주연

2024년 영화 위키드(Wicked) 공식 포스터,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 주연

노래에 정신 팔려 봤다가, 두 번째에 디테일이 보인 영화

2024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위키드(Wicked)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저는 노래와 화면에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퍼포먼스가 워낙 강렬해서, 스토리의 디테일을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몇몇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 번 더 봤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에 "아,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싶은 순간들이 쏟아졌어요. 처음에는 그냥 화려하게만 봤던 장면들이 사실은 꽤 정교한 의미를 담고 있었던 거예요.

위키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의 프리퀄이에요. 그 유명한 "서쪽의 못된 마녀"가 어떻게 그런 마녀가 됐는지, 그리고 착한 마녀 글린다와 어떤 관계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동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원작이고, 그 뮤지컬은 1995년 소설을 바탕으로 했어요. 워낙 유명한 뮤지컬이라 영화화 소식만으로도 화제가 됐던 작품입니다.

이 글은 두 번 본 후의 후기입니다. 뮤지컬을 모르고 보신 분, 또는 노래에 빠져서 스토리를 놓치신 분이라면, 이 영화에 어떤 디테일이 숨어 있었는지 함께 정리해보고 싶어요. 두 번째 관람이 왜 더 좋은지 알게 되실 거예요.

엘파바와 글린다, 정반대인 두 사람의 만남

영화 위키드 엘파바와 글린다가 쉬즈 대학교에서 함께 있는 장면

영화 위키드 엘파바와 글린다가 쉬즈 대학교에서 함께 있는 장면

 

이야기의 두 주인공은 엘파바(신시아 에리보)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예요. 두 사람은 마법 학교 쉬즈 대학교에서 룸메이트로 만납니다.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초록색이에요. 그 때문에 평생 사람들의 따돌림과 놀림을 받으며 자랐어요. 그런데 그녀는 주눅 들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놀림에 울거나 움츠러들기보다, 자기 안의 강한 마법으로 맞받아치며 자란 인물이에요. 자존심이 세고, 정의감이 강하고, 타고난 마법 재능이 있습니다.

글린다는 정반대예요. 금발에 예쁘고, 인기 많고, 사교적인 인물입니다.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사회적 성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처음에 두 사람은 서로를 정말 싫어합니다. 너무 다르니까요. 초록 피부의 까칠한 엘파바와, 화려하고 인기 많은 글린다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예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은 천천히 친구가 됩니다. 이 우정의 변화 과정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축이에요. 서로를 싫어하던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는지, 그 과정이 영화 전반부를 채웁니다.

제가 이 설정이 흥미로웠던 건, 두 사람이 나중에 "착한 마녀"와 "못된 마녀"로 갈라지게 된다는 걸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오즈의 마법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두 친구가 결국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된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두 사람이 친해질수록 마음이 더 복잡해져요. 이렇게 친한 두 사람이 어쩌다 갈라서게 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영화를 끌고 갑니다.

클럽에서 혼자 추는 춤, 허세가 아니었던 그 장면

제가 두 번째로 보면서 완전히 다르게 느낀 장면이 있어요. 바로 엘파바가 클럽(무도회)에서 혼자 춤을 추는 장면이에요.

상황은 이래요. 글린다가 장난삼아 엘파바에게 이상한 모자를 선물했고, 엘파바는 그걸 모르고 무도회에 그 모자를 쓰고 나타나요.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습니다. 게다가 엘파바는 그 직전에 글린다도 마법 수업을 받게 해달라고 교수님께 부탁까지 하고 온 상황이었어요. 호의를 베풀고 돌아왔는데 웃음거리가 된 거죠.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장면을 그냥 "당당한 캐릭터구나" 정도로만 봤어요. 엘파바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모자를 벗지 않고 혼자 춤을 추기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보니까 이 장면이 훨씬 복잡하다는 걸 알았어요.

엘파바는 감정이 격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마법을 쓰는 인물이에요. 그러니까 그 순간 분노를 터뜨리면 마법이 폭발할 수도 있고, 그러면 글린다의 완전한 승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엘파바는 분노 대신 춤을 택합니다. 그 춤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폭발하려는 자기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었던 거예요. 자기 자신까지 속이려는 처절한 감정 통제요.

이 장면이 더 좋아지는 건 그 다음이에요. 그 모습을 본 글린다가 죄책감을 느끼고, 클럽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엘파바를 따라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아무 말도 없어요. 그런데 그 행동 자체가 사과예요. "내가 잘못했다"는 말 없는 사과. 두 사람의 우정이 바로 이 순간 시작됩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는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부분 중 하나예요. 무대 위 퍼포먼스로 마음을 전하는 이 방식위대한 쇼맨을 떠올리게 했어요. 두 영화 모두 노래와 춤이라는 무대 언어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즈의 정체, 가장 잘 설계된 반전

영화 위키드 엘파바가 에메랄드 시티에 도착한 장면

영화 위키드 엘파바가 에메랄드 시티에 도착한 장면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설계된 반전은 오즈의 마법사의 정체예요. 두 사람은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만나기 위해 에메랄드 시티로 가는데, 거기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위대한 마법사라고 알려진 오즈는 사실 마법을 전혀 쓸 줄 모르는 평범한 인간이었어요. 그는 원래 미국에서 서커스 일을 하던 사람인데, 열기구를 타다가 사고로 오즈 세계에 떨어졌어요. 그리고 우연한 오해가 겹치면서 "위대한 마법사"로 추앙받게 된 거예요. 마법이 아니라 그저 기계 장치와 사람들의 믿음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가짜였습니다.

이 반전이 좋은 이유는, 관객은 오즈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는데 극 중 사람들은 여전히 모른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오즈가 가짜라는 걸 아는 채로 영화를 보게 되고, 그래서 오즈가 위대한 척하는 장면마다 묘한 긴장감이 생겨요. 진실을 아는 관객과 모르는 등장인물 사이의 그 격차가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진실이 엘파바를 바꿔놓아요. 엘파바는 오즈가 가짜라는 걸, 그리고 그가 동물들을 억압하는 부당한 권력자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정의감이 강한 엘파바는 그 부당함에 맞서기로 결심해요. 그런데 바로 그 선택 때문에 그녀는 "못된 마녀"로 몰리게 됩니다. 진실을 알고 옳은 일을 하려 했을 뿐인데, 권력자에 의해 악당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이 지점이 위키드라는 작품의 핵심이에요. 우리가 알던 "서쪽의 못된 마녀"가 사실은 부당한 권력에 맞선 정의로운 인물이었다는 것. 오즈의 마법사에서 악당으로 그려진 그 마녀에게 사실은 이런 사연이 있었다는 게, 이 프리퀄이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예요. 누가 악당을 만드는가, 그리고 역사는 누구의 시선으로 기록되는가 하는 질문이요.

글린다의 선택, 따라가지 않은 것은 비겁함이었을까

영화의 마지막, 두 사람은 갈림길에 섭니다. 엘파바는 오즈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기로 하고, 글린다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기로 해요. 두 친구가 정반대의 길로 갈라서는 순간이에요.

처음 봤을 때 저는 글린다의 선택이 좀 비겁해 보였어요. 친구가 옳은 일을 하러 가는데 같이 안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두 번째 보니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어요.

글린다의 목표는 처음부터 사회적 성공이었어요. 오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위대한 마녀가 된다는 건, 핵심 권력층이 된다는 의미였어요. 그녀는 그 자리를 평생 원해왔고, 그 길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반면 엘파바는 그 권력 구조 자체에 맞서기로 한 거고요. 두 사람의 목표가 근본적으로 달랐던 거예요.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갈라선다는 점이에요. 엘파바는 글린다에게 같이 가자고 강요하지 않고, 글린다도 엘파바를 막지 않아요.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그저 각자의 길을 가는 거예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오히려 이게 더 현실적인 우정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어요. 같은 길을 걷지 않아도 우정은 유효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로 보면서 글린다라는 캐릭터가 더 안쓰러워졌어요. 그녀는 모든 진실을 알면서도 대중 앞에서는 엘파바를 욕해야 하는 처지가 돼요. 친구가 사실은 옳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 친구를 비난해야 하는 삶. 겉으로는 화려한 성공을 거뒀지만 속은 텅 빈 그 삶이, 사실 엘파바의 고난보다 더 외로울 수도 있어요. 이 공허함이 다음 편에서 어떻게 터져 나올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모든 노래를 라이브로, 이 영화의 진짜 차별점

위키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악이에요. 그리고 이 영화에는 다른 뮤지컬 영화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별점이 하나 있어요.

배우들이 모든 노래를 촬영 현장에서 직접 라이브로 불렀다는 것이에요. 보통 뮤지컬 영화는 미리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한 다음, 촬영할 때는 그 음원에 입만 맞추는 방식으로 찍어요. 그런데 위키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배우들이 실제 촬영장에서, 연기를 하면서 동시에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그 순간의 감정이 노래에 그대로 담기기 때문이에요. 미리 녹음한 완벽한 음원에는 없는, 그 장면에서 인물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의 떨림이 노래에 살아 있어요. 신시아 에리보가 부르는 노래에서 그 차이가 특히 느껴져요. 완벽하게 다듬어진 소리가 아니라, 그 순간 엘파바가 느끼는 감정이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나거든요.

두 배우의 캐스팅도 화제였어요. 아리아나 그란데는 어릴 때부터 위키드 뮤지컬의 열렬한 팬이었고, 글린다 역을 평생 꿈꿔온 사람이에요. 신시아 에리보는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고요. 두 사람 모두 이 작품에 진심이었다는 게 화면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맡으면 결과물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예요.

이 영화는 비평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2024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선정했고, 전미비평가위원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뮤지컬 영화가 이런 평가를 받는 게 흔치 않은데, 그만큼 음악과 영화적 완성도의 균형을 잘 잡았다는 뜻이에요.

음악이 영화의 절반을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위키드는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보셔야 할 작품이에요. 큰 화면과 좋은 사운드로 보면 그 감동이 배가 됩니다.

Defying Gravity로 끝나는 1편, 그리고 남은 이야기

위키드는 원래 한 편의 뮤지컬인데, 영화는 이걸 두 편으로 나눠서 제작했어요. 이번 작품은 그중 1편이에요. 이야기를 충분히 담기 위해 둘로 나눴다고 해요.

그래서 1편은 그 유명한 명곡 'Defying Gravity(중력을 거슬러)'로 막을 내립니다. 엘파바가 부당한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는 노래예요. 그녀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클라이맥스이자 가장 강렬한 순간이에요. 이 한 곡을 위해 영화 전체가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왜 이렇게 설명이 없지?" 싶은 부분도 있었어요. 영화가 친절하게 다 설명해주지 않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보면서 오히려 설명하지 않고 관객에게 맡긴 장면들이 더 강하게 남더라고요. 엘파바의 춤이 그랬고, 글린다의 마지막 표정이 그랬어요. 다 설명했다면 오히려 가벼워졌을 장면들이에요.

다만 한 가지 짚자면, 1편만으로는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에요. 두 편으로 나눈 만큼, 1편은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끝나요. 그래서 2편을 봐야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다행히 2편은 2025년에 공개됐어요. 1편을 인상 깊게 보신 분이라면 이어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위키드 파트1은 화려한 뮤지컬 영화이면서, 동시에 "누가 악당을 만드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한 번은 노래와 화면을 즐기며 보고, 두 번째는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찾으며 보시면 두 배로 즐길 수 있어요. 특히 엘파바의 춤 장면과 오즈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은, 두 번째에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예요.

참고로 노래와 무대가 핵심이 되는 음악 영화들을 이 블로그에서 자주 다루고 있습니다. 비슷한 결의 영화 리뷰가 궁금하시다면 가끔 들러주세요.

※ 본 글에 사용된 영화 포스터 및 스틸컷의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으며, 비평·정보 제공 목적으로 인용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