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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쇼맨 리뷰, OST 때문에 영화를 다시 본 사람의 후기

무비라이터 2026. 5. 14. 08:00

2017년 영화 위대한 쇼맨 공식 포스터, 휴 잭맨 주연

2017년 영화 위대한 쇼맨 공식 포스터, 휴 잭맨 주연

"This Is Me"가 흘러서 영화부터 다시 봤습니다

어느 날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I am brave, I am bruised…" 위대한 쇼맨의 "This Is Me"였습니다. 처음 듣는 노래도 아닌데 그날 따라 그 곡이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생각해보니 영화를 본 지가 꽤 됐더라고요. 개봉했을 때 한 번 봤고, 그 뒤로 OST는 운동할 때마다 들었는데, 정작 영화 자체는 다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OTT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다시 봤습니다.

그리고 알게 됐습니다. 이 영화는 OST가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영화 자체가 가려진 작품이라는 걸요. 사람들이 노래만 듣고 영화는 안 보는 경우가 꽤 많을 것 같습니다. 노래 한두 곡으로 이 영화를 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영화 전체로 다시 보시기를 권합니다. 노래가 흐르는 그 정확한 맥락을 알게 되면, 같은 노래도 완전히 다르게 들리거든요.

이 글은 OST부터 다시 들어와서 영화로 들어간 사람의 후기입니다. 그래서 음악 이야기가 글 전반에 자연스럽게 깔려 있을 거고, 그게 이 영화에는 잘 어울리는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A Million Dreams가 시작되는 곳, 바넘의 어린 시절

위대한 쇼맨 바넘과 체리티의 어린 시절 사랑 장면

위대한 쇼맨 바넘과 체리티의 어린 시절 사랑 장면

 

영화는 화려한 서커스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바넘(휴 잭맨)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양복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바넘은 아버지를 따라 상류층 저택을 드나들며 살았습니다. 그 집의 딸 체리티(미셸 윌리엄스)와 눈이 마주치고, 신분 차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편지로 사랑을 키워갑니다.

이 시퀀스에 흐르는 노래가 "A Million Dreams"입니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사실 이 한 곡에 다 들어 있다고 봅니다. 가난한 양복장이 아들이 머릿속에 만든 100만 개의 꿈. 그 꿈이 결국 서커스가 되고, 박물관이 되고, 위대한 쇼맨이라는 칭호로 이어집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이 부분이 길다고 느꼈습니다. 빨리 서커스 나오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어린 시절 시퀀스가 없으면 영화 후반부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보였습니다. 바넘이 왜 그렇게 인정에 목말랐는지, 왜 끊임없이 더 큰 무대를 갈망했는지, 그 모든 게 어린 시절에서 시작됐거든요. 상류층 저택 문 앞에서 쫓겨난 그 경험이 평생 그를 따라다닌 겁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굶주리던 어린 바넘이 빵을 훔치다 들키는 장면, 그리고 한 단원(나중에 서커스에서 다시 만나게 될 인물)이 사과 한 알을 건네주는 장면. 이 작은 장면 하나가 영화 끝까지 메아리치는 복선이 됩니다.

This Is Me, 그 장면이 왜 그토록 큰 울림인가

위대한 쇼맨 단원들의 This Is Me 무대 퍼포먼스 장면

위대한 쇼맨 단원들의 This Is Me 무대 퍼포먼스 장면

 

바넘이 회사에서 해고된 뒤 박물관을 차립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략을 바꿉니다. 세상이 외면해온 사람들 — 거인, 소인, 수염 난 여성, 공중 곡예사, 흑인 남매 — 을 무대 위로 올립니다.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살짝 걱정스러웠습니다. "이거 결국 사람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리고 그 걱정은 영화 중반에 다시 한번 직접 등장합니다. 상류층 인사들이 단원들을 무시하고, 거리에서 시위대가 박물관을 비난할 때. 영화는 그 비판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This Is Me" 장면이 나옵니다. 키와라(이른바 '수염 난 여성', 키일라 세틀 분)가 무대 뒤편에서 한 발 두 발 앞으로 나오며 부르는 그 노래. 처음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해서, 끝에 가서는 단원들 전체가 함께 행진하며 부르는 그 한 곡.

저는 이 장면에서 정말 울컥했습니다. 노래 자체가 좋은 것도 맞지만, 그 노래가 흐르는 그 장면의 맥락이 노래의 의미를 완성합니다. 평생 자신을 숨기거나 가려야 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기 모습 그대로 무대에 서서 "이게 나야"라고 선언하는 순간. 이 장면 하나로 영화가 가진 모든 윤리적 모호함이 어떤 식으로든 해소됩니다. 적어도 무대 위에서 단원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긍정받았으니까요.

OST로만 들었을 때 "This Is Me"는 그냥 힘 있는 응원가 같은 노래입니다. 그런데 영화로 보면 이게 한 사람이 평생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노래라는 게 보입니다. 같은 곡이 완전히 다른 노래가 되는 순간이에요.

Rewrite The Stars, 필립과 앤의 공중에서 부른 사랑

위대한 쇼맨 필립과 앤의 Rewrite The Stars 공중 곡예 듀엣 장면

위대한 쇼맨 필립과 앤의 Rewrite The Stars 공중 곡예 듀엣 장면

 

바넘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상류층 청년 필립(잭 에프론)을 동업자로 영입합니다. 필립은 흑인 공중 곡예사 앤(젠다야)을 본 순간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의 또 다른 축이 됩니다.

이 두 사람이 부르는 곡이 "Rewrite The Stars"입니다. 빈 서커스 천막 안에서, 앤이 공중에 매달려 그네를 타고, 필립이 그 아래에서 달려가며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그 장면. 두 사람이 진짜로 만나려면 별자리를 다시 써야 할 만큼의 거리가 있다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안무입니다.

현실에서 그 거리는 인종이라는 벽입니다. 19세기 미국에서 백인 상류층 청년이 흑인 여성과 공개적으로 만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화 중반에 필립이 부모님 앞에서 앤의 손을 놓아버리는 장면은 꽤 잔인하게 현실적입니다. 사랑한다는 마음과, 그 사랑을 세상 앞에 드러낼 용기는 다른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저는 이 영화에서 바넘과 체리티의 사랑보다 필립과 앤의 사랑이 더 인상에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랑은 영화 끝까지 "쉬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재가 나서 필립이 위험에 빠진 후에야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꽉 잡는데, 그 장면도 결국 두 사람을 둘러싼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두 사람의 각오가 변한 거에 가깝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 그리고 그럼에도 좋았던 이유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영화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바넘이 성공의 정점에 올랐다가 모든 걸 잃는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진행됩니다. 성악가 제니 린드와의 스캔들, 박물관 화재, 체리티가 떠나는 일까지 한꺼번에 몰려오는데, 각 사건에 충분한 시간을 안 줘서 감정 이입이 조금 끊깁니다. 다시 봐도 이 부분은 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실제 P.T. 바넘이라는 인물에 대한 미화가 분명히 있습니다. 영화는 그를 "단원들을 가족처럼 대한 따뜻한 쇼맨"으로 그리지만, 역사 기록을 보면 실제 바넘은 단원들을 상품처럼 다룬 측면도 강했습니다. 영화는 그 부분을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이걸 알고 영화를 보면 약간 복잡한 마음이 되긴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받아들이는 무대가 있을 수 있다" — 가 너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역사의 모호함과 별개로, 영화가 단원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무대를 그리는 방식은 진심이 느껴집니다.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을 흔드는 영화는 있고, 위대한 쇼맨은 그런 영화입니다.

From Now On, 바넘이 결국 깨달은 것

바넘이 모든 걸 잃고 술집에 혼자 앉아있을 때, 단원들이 그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부르는 노래가 "From Now On"입니다. 영화 초반에 어린 바넘에게 사과 한 알을 건네줬던 그 손길이, 이제 어른이 된 바넘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미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단순합니다. 바넘이 큰 성공보다 가족과 동료를 선택한다는 것. 그리고 단장 자리를 필립에게 넘기고, 자신은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것. 너무 깔끔해서 약간 동화 같지만, 한편으론 이 영화의 톤에 잘 맞는 마무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느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이 평생 갈망하는 인정은 사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이미 받고 있다는 것. 바넘이 그토록 갈구한 상류층의 인정은 결국 그를 채워주지 못했고, 정작 그를 다시 살려낸 건 단원들과 가족이었습니다.

위대한 쇼맨은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노래 한 곡 한 곡이 정확한 자리에 놓여있는 영화입니다. OST로 먼저 들으신 분이라면 영화 전체를 한 번 보시기를, 영화를 한 번 보신 분이라면 OST를 통째로 다시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 보입니다.

참고로 음악과 무대를 다룬 다른 영화들도 결이 비슷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차차 그런 영화들도 다뤄볼 예정이니, 비슷한 결의 영화 리뷰가 궁금하시다면 가끔 들러주세요.

 

※ 본 글에 사용된 영화 포스터 및 스틸컷의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으며, 비평·정보 제공 목적으로 인용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